영화리뷰 [북악하늘 영화로 세상읽기] –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 4th Place》을 통해 생각해보는 경쟁사회 속에서 체벌을 통한 엘리트체육의 한계와 헨델의 ‘라르고’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 4th Place》을 통해 생각해보는 경쟁사회 속에서 체벌을 통한 엘리트체육의 한계와 헨델의 ‘라르고’​■ 개요: 드라마 / 한국 / 116분 / 15세 관람가 / 2015년​■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준(광수), 이항나(정애), 유재상(준호), 최무성(영훈), 정가람(어린광수)​​

지난 화요일(24일), 《북악하늘》의 ‘영화로 세상읽기’ 일환으로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을 보았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4등’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영화는 1등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4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치와 행복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4등이 1등보다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4등에 만족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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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등〉의 감독은 정지우이다.여러 히트작을 낸 감독이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소재와 묘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 〈4등〉이 정지우 감독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바에 합당한 영화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인 〈해피엔드〉나 〈은교〉 그리고 〈모던보이〉, 〈이끼〉, 〈사랑니〉 등에서 보여줬던 장르영화로서의 센 이미지와는 달리, 이 영화는 독립영화에 가까운 특징마저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감독의 대표작이 있다고 해서, 그와 비슷한 부류의 작품만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연히 다양한 관점과 해석 그리고 주제가 표현된 작품들이 제작될 수 있다. 이는 정지우 감독의 다양성 측면에서 그 스펙트럼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 〈4등〉은 그 내용이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소위, ‘세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다소 밋밋하다고 느끼거나 화면에 볼거리가 시원치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활극이나 격투씬도 없고 스펙터클한 장면도 없다. 물론 CG도 거의 없다. 아날로그 맛이 강하다. 세밀한 감정선의 변화도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들 간에 느껴지는 소소한 맛은 있다. 등장인물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는 것도 관람하는 재미 중 하나이다.​촬영기법면에서는 수중촬영 장면이나 엔딩부분에서 선수들이 역영을 펼치는 장면을 조감하는 장면들이 구도 상으로 잘 표현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미장센이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의도를 가지고 수영장씬과 수중씬을 찍은 것이 느껴진다.​이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이다.때문에 인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특별히 스포츠에 만연한 체벌과 관련된 인권문제는 이 영화에서 메인 포커스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체벌을 통해 1등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엘리트체육 위주로 발전해온 한국 스포츠계에 던지는 화두인 셈이다. 그렇다고 1등을 향한 노력이 없어도 된다거나 쉬엄쉬엄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씌우려는 의도는 아니다. 1등을 향한 동기부여라는 목표는 같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체벌이냐 아니면 좀 늦더라도 선수 각자가 자각하여 내면으로부터 분출된 의지냐에 대한 문제이리라. 하지만 이 역시 조금은 터놓은 상태에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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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체벌과 관련된 주제가 가장 크지만, 그 외에도 이와 연관되어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먼저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왜 수영코치 광수(박해준)가 준호(유재상)를 체벌을 통해 가르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기본적으로는 그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다못해 맞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하게 되니까 말이다. 혹은 체벌이라는 방법이 좀 나태했던 마음가짐을 다잡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다.​하지만 오직 그게 전부일까?영화 시작부분을 보면, 광수의 국가대표시절 영상이 흑백으로 처리되어 나온다. 영화 전체의 분량에 빗대로 볼 때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감독의 의가 엿보인다. 과거의 광수는 수영에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선수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기까지 한다. 그것도 그 전날 거의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말이다. 그만큼 탁월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그를 대하는 코치들의 태도는 다른 선수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유독 광수 혼자만 특별대우를 받고 다른 선수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모두 광수를 위한 들러리로 존재할 뿐이다.​그런 광수에 대한 특별한 대우는 결국 그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도박에 빠져 훈련마저 불참하고 무단이탈하는 빌미가 된다. 특별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광수에게 자만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과도한 자기 신뢰와 통제력을 상실한 자기 관리로 이어진다.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수영장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 화가 난 감독은 체벌을 가한다. 참다못한 광수는 뛰쳐나가고 결국 경기에 참석하지 못한다. 분을 참지 못한 광수는 아는 언론사 기자를 통해 이 사건을 이슈화하려했지만, 오히려 핀잔을 듣고 뜻을 이루지 못한다.​체벌을 통한 아픔을 경험했던 광수였지만, 여전히 그는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준호를 ‘체벌’이라는 방법을 통해 가르친다.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광수의 한계였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때 그 체벌을 참지 못해 뛰쳐나간 것에 대한 뒤늦은 자신에 대한 후회였을까? 그래도 과거를 반추해보면 체벌을 통한 방법이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는 판단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배우고 접한 것이 체벌이기에, 그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 판단은 관객 몫이리라.​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광수와 준호의 유사점과 차이점이다.광수와 준호는 둘 다 천재적인 수영능력을 갖춘 선수인 면에 있어서는 동일했지만, 그런 천재적인 재능을 갖게 된 동기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광수는 생존을 위해서, 즉 원하는 용돈을 아­빠께 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향해 뛰어들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즉 광수에게 있어서 수영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였고, 이를 통해서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수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적화된 도구였다.​그런데 준호는 어떤가?그에게 있어서 수영은 즐기며 누를 수 있는, 소위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다. 그는 수영하는 것에 행복을 느꼈고 즐길 줄 알았다. 준호에게 수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대상이었고 놀이였다.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가 1등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에게 있어서 수영은 1등을 해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기는 목적이자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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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출간한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라는 책이 있다.​

문제는 준호의 엄마 정애(이항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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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상반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특정한 사람을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최고로 만드는 엘리트체육. 그에 반해 일상에서 삶을 누리며 즐기는 방편으로의 생활체육. 견해에 따라 양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사실,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엘리트체육이 필요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을 통해 삶을 누리지 못하고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만 익숙해진다면, 이 또한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슬픈 현실이 될 것이다.​문제는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그런 점에서 영화는 시종일관 동일한 톤을 보여준다. 그것은 느리지만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다. 광수가 스포츠센터에서 준호를 담당하게 된 것을 가지고 선배와 이야기한 장면에서 살짝 언급되었듯이, 그 아이는 그냥 놔두면 언젠가는 제 몫을 해낼 아이이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기다림을 조급함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에서 준호는 스스로 동기부여가 된다.자신이 1등을 해야 하는 이유를 준호 스스로 찾는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1등을 쟁취한다. 경쟁을 통해 1등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극된 동기부여를 통해 1등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옴브라 마이 푸(Ombra mai fu)’로 알려진 헨델의 ‘라르고’가 엔딩을 장식한다. 느리지만 평안한 가운데 안식이 있는 삶을 지향하면서 결국 최고의 결과를 이뤄내는 것이다.​그래서 그런가?영화는 엔딩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며 마음껏 물속을 잠영으로 활보하는 준호를 보여준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롭게 물속을 누비며 누릴 수 있을까? 준호는 그 속에서 빛을 발견한다. 저 우주의 태양으로부터 발원된, 수없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에 다다른 그 빛을 준호는 맞이하고 맞고 있다. 그러면서 그 빛 가운에 일체감을 느끼고 놀 줄 안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준호는 탐닉하고 있는 것이리라. 느리지만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는 충분히 수영을 만끽하고 있다. 결과는 중요치 않다. 너무 빤한 말이지만, 다만 따라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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